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팔 전투 (문단 편집) === 무타구치 렌야의 주장 ===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 [[노획|적의 보급품을 빼앗아]] 아군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것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역사가 증명하듯 '''정석 중의 정석'''이지만, 동시에 '''이것만으로 보급을 운용하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특히 3개 사단에 이르는 정규군이라면 더더욱 말이 안되는 행위다. 이론상 적의 숫자가 '''훨씬''' 많고, 이를 '''보급품과 아군의 피해가 거의 없이''' 확실하게 구축한 뒤 보급품을 온전히 탈취한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로는 힘든 상황이고, 특히 보급품은 어지간히 군기가 박살나지 않은 이상 주요물자인 만큼 엄중히 지켜지고 관리에 철저하기 때문에 다 없애면 없앴지 상대가 약탈하게 두는 경우는 적다. 그래서 적병이 많으면 온전한 노획이 힘들어지고 반대로 적병의 수가 적다면 노획에 성공하더라도 아군을 유지시킬 만한 물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남방지역에 파견된 일본군이 전쟁 초기 [[싱가포르 전투]]에서 단시간에 승리하여 운좋게 많은 물자의 노획에 성공한 적은 있었으나, 그로 인하여 노획과 왕성한 전투의욕만 있다면 보급은 해결할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이 무타구치를 비롯한 많은 고급지휘관들에게 생겼고 결국 임팔전투에서 노획만 염두에 두고 보급을 무시하게 되어 큰 악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냉병기 위주로 흘러가 줍기만 하면 써먹는 게 가능했던 중근대 전쟁까지와 달리 현대는 식량이라면 모를까 탄약 등 호환성이 요구되는 물자는 쓰기가 까다로웠으며, 특히 [[일본군의 무기체계]]는 '''자국 내 병기들끼리의 호환성조차 의심되는 수준'''이라 줘봤자 상대의 손해만 만들 뿐 그를 아군의 이득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지는 못한다. 그나마 식량을 구한다 해봤자 상술한 대로 기약 없는 약탈에만 의존하면 항상 필요한 양 이상을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식량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적군이 "식량하고 탄약 가져가십쇼." 하며 순순히 넘겨줄 만큼 [[호구(유행어)|호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것도 아니다. 난전 중이라면 모르지만 후방에 있는 보급 지역에는 이미 질 듯하다 싶으면 후퇴하면서 챙기거나 챙기지 못한 보급품들은 적들이 못 쓰게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과거 [[청야전술]]만 봐도 알 수 있는 사례인데, 대부분의 군대의 약탈은 '''추가''' 보급에 의의를 뒀지 그것만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청야전술이 먹힌 사례는 '''적군을 해당 작전 지역에 적군의 예상 시간 이상으로 붙들어 놓을 수 있을 때''' 효과를 보는 것이지, 즉각적으로 효과를 보려는 적은 없었다.] 그리고 군사물자에는 식량과 탄약, 무기뿐만 아니라 세신도구나 의류, 자질구레한 각종 생활용품들도 포함되는데, 약탈에 성공했다 해도 해당 지역에 보관된 물자가 비누, 군화, 면도칼 이런 것만 있다면 제대로 써먹기 힘들다. 면도칼과 철모로 싸우고 군화와 비누를 씹어먹으며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정상적인 작전은 절대 불가능하다. 게다가 적군이 사용하는 피복이나 텐트 같은 물건들은 아군 오사의 가능성과 국제법 위반문제로 야전에서 아군이 사용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적이 벌어져서 작전에 필요한 물자를 모조리 얻는다고 해도 대규모 공격군에게 보급하려면 실셈하고, 정비하고, 운반하고, 배급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는 동안 적은 더욱 철저한 방어계획을 수립할 것이 당연지사고 심하면 아예 역습에 나설 수도 있다.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동물)|말]]에 싣고 가다가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저 '식량'으로 쓰겠다는 [[코끼리]]와 소, 말은 대개 점령지에서 조달했는데, 먹이도 제대로 안 주고 부려 먹은 데다가 원래 종자들이 장거리 이동을 잘 안 하는 종들이라 먹은 소보다 지쳐서 객사한 소가 더 많았다고 한다. 원래 가축을 식량으로 이용하는 신속한 기동전은 평지에서 가능한 전술로, [[정글]]과 고산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다구치의 징기스칸 전법은 이론만 그럴 듯한 전형적인 탁상공론으로 국경을 지나자 가축들은 친드윈 강을 건너다가 익사하고, 아라칸 산맥을 넘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포격에 놀라 도망치기도 했다. 심지어 사료 문제가 거론될 때 '이것(가축)들은 초식동물이니 길가의 풀을 먹여 사료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글쎄올시다' 소리가 나올 게 뻔한 실언이었다. 군부대의 보급과 같은 대규모 수송에 동물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길가의 풀'은 조속히 고갈되는 데다 독초 등을 뜯어먹고 쓰러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마초 역시 보급해야 한다는 점은 이미 [[크림전쟁]]에서 [[러시아군]]이 경험한 사실이며, 멀게는 [[삼국지]]나 [[갈리아 전기|갈리아 원정기]] 등에도 마초 보급을 따로 준비하는 대목이 나온다. 소나 말, [[양(동물)|양]] 등이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는 초식동물이긴 하지만. 단순히 방목해서는 영양효율이 영 좋지 않다. 순수하게 풀만 뜯어먹고 배를 채우게 하려면 거의 하루 종일 풀밭에 풀어놓고 풀을 뜯게 해야 하므로 필요한 목초지의 넓이도 상상 이상으로 넓다. 실제 역사에서 [[목동]]들이 아침이면 소때나 말떼, 양떼를 몰고 풀밭에 나가서 풀을 뜯게 하다가 해질녘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것이나 가축을 대량으로 키우는 [[유목민]]들이 허구한 날 좋은 목초지를 빼앗기 위해 다른 부족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도 그만큼 가축들을 배부르게 먹이려면 넓은 풀밭과 안전하고 긴 시간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다. 수많은 나라의 농민들은 [[귀리]]나 [[보리]], [[콩]] 같은 각종 곡물을 소와 말에게 사료로 제공했으며, 우리 조상들은 아예 곡식과 건초를 함께 넣어 푹 끓인 여물(소죽)을 쑤어 먹였다. 풀보다 훨씬 영양효율이 높은 곡식을, 소화흡수율이 높아지도록 익혀서 먹여야 일을 시킬 수 있기에 그렇게 귀찮은 짓을 한 것이다. 물론 전장에서 우마를 먹이기 위한 건초를 '충분히' 준비한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장군들이 건초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고, 어떤 전쟁이든 보급이란 항상 빡빡하고 모자랐기 때문에 길가의 풀로 어떻게든 대체 가능한 건초는 가장 먼저 포기되는 후순위 보급품에 가까웠던 것이다[* 추위로 인한 동사와 함께 전시에 동원된 군마나 가축들이 픽픽 쓰러져 죽어가는 원인이기도 했다.]. 실제로 2차대전의 일본 및 독일군 역시 건초 보급은 후순위로 밀었으며, 많은 경우 현지민의 건초를 '징발'하거나 '목초지에서 풀뜯게 하는' 것으로 건초 보급을 대체했으니 길가의 풀을 뜯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틀린 게 아니다. > "첫째, 만주 병사 1만명, 한족 병사 3만명이 출병하면 말 10만 필이 필요하지만 이를 조달하기가 어렵고 둘째, 10달 동안 4만 명의 병사와 10만 필의 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양식은 쌀 42만 석에 이르지만 윈난성에서 나는 식량은 불과 35만 석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내지로부터 변경까지 지형이 험해서 행군이 어렵다. 넷째, 보급선을 유지하려면 인부 세 명이 쌀 한 석씩 운반한다고 해도 엄청난 인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미얀마는 중국와 물이나 기후가 달라서 정복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전쟁으로 인한 전사자보다 전염병으로 죽은 자가 많았던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 > - [[청나라]] 건륭 33년(1768년) 미얀마와의 전쟁 와중 상서참찬대신 서혁덕, 그리고 운귀총독 악녕이 청 조정에 올린 상소문. 미얀마 일대에서의 군사 작전이 어려운 5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해당 지역에서의 보급 및 기후적 어려움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다만 임팔 전역과 같은 정글의 경우, 잘 닦여진 목초지와는 다르다. 말이나 소가 먹을 수 없는 독초가 널려있고 가축에게 질병을 옮길 수 있는 벌레가 득실거리며 더운 열기와 습기 역시 가축을 병들게 하는데 목초지처럼 가축을 몰아넣고 방목하기에는 좋지 않다. 일반 목초지처럼 넓고 아늑한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행군 도중에 다수의 말과 소를 몰아넣을 공간조차 마땅치 않다. 만약 부피가 크고 무거운 마초를 따로 준비할 경우 그 마초를 실을 소와 말을 더 동원해야 하고 당연히 보급 관리에 애로사항이 더욱 꽃핀다. 당연히 마초를 수송하는 소와 말을 먹일 마초를 준비하면 실을 것이 더 늘어나니 소와 말을 추가해야 하고, 다시 추가한 소와 말을 위한 마초를 준비하면 실을 마초가 늘어났으니 다시 소와 말을 추가하고 이렇게 계산을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소와 말을 추가하지 않아도 되긴 하는데, 결과적으로 준비해야 할 소와 말과 마초가 생각했던 것보다 3~4배 정도 불어난다. 다 자란 소 1마리에게 필요한 하루 건초의 양은 약 10 kg이다.[* 마른 건초가 아니라 방목해서 풀을 뜯어 먹는 경우에 소는 하루에 체중의 10%~14%를 먹어야 한다. 풀의 수분 함유량에 따라 섭취량이 달라지는데 보통 풀무게의 5분의 1정도를 섭취한다. 600 kg 정도인 평범한 소라면 최소 하루에 풀 60 kg을 먹고 12 kg을 섭취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런 경우 하루 종일 풀만 뜯어먹는다. 소가 1천 마리면 그 지역의 풀 60톤이 하루 만에 사라진다. [[유목민]]들이 목초지를 찾아 계속 이동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고 유목민들이 소보다 적게 먹는 말과 양을 주로 키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팔 작전을 위해 동원된 말과 [[노새]]가 1만 2천 마리, 소가 3만 마리이니 하루에 건초를 약 420톤 준비해야 한다. (임팔작전의 주요기간인 1944년 3월 초부터 5월 초까지) 60일간 작전을 위해서는 건초를 무려 2만 5천 톤, 중간에 잡아먹음을 감안해도 대충 건초 1만 5천 톤을 수송해야 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건초(수분 함유량 12% 이하)를 일상생활할 때 이야기로, 탄약 운송 같은 중노동을 했다면 당연히 훨씬 많이 먹어야 한다. 추가로 건초는 중량문제 말고도 부피가 엄청나기 때문에 실제 수송은 더 힘들다. 그러니 트럭으로 보급을 하기 힘들어, 소를 통해 수송한다는 전제부터 넌센스다. 거기에 정글이라 습하고 더운데다 [[스콜]] 등의 열대성 소나기가 잦으니 기껏 준비한 건초가 축축해져서 상하기도 쉽다. 가축을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듯이 비에 젖어 상한 풀을 먹이면 곧바로 식중독과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 최악의 경우엔 [[전염병]]으로 인해 가축이 집단 폐사하는 일까지 생길 수 있다. 수송 도중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가축이 죽어나가서 장비와 식량, 건초를 실을 우마가 줄어들면 추가 수송부담은 병사들에게 결국 돌아오므로 전투력 감소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 숲 때문에 항공 정찰을 통한 시야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같은 이유로 효과적인 폭격이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이 말이 맞을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허나, 이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이자 무타구치를 포함한 일본군이 얼마나 보급을 경시했는지 알 수 있는 소리다. 정글은 병참 계획을 세우기 굉장히 어렵지만 차량 자산의 운영도 어려운 특성 상 보병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한 병참의 필요성이 상당히 높은 적대적인 환경이다. 이래서 항공기로 물자를 보급하는 것은 상당히 좋은 수단이였고 영국군은 항공 보급으로 물자를 공급했으며 제5 인도 보병사단을 아라킨에서 임팔 전선으로 공수시키는 등 항공기를 잘 써먹었다. 이런 결과 당시 굶주린 [[일본 제국 육군|일본 육군]]들까지 그 항공물자가 자기 쪽으로 떨어지기만을 고대했고, 운 좋게 손에 넣으면 '[[윈스턴 처칠|처칠]] 급여'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척박한 정글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가축수송 보급보다는, 연료가 적어서 자주 비행 못 한다 하더라도 항공기로 보급해야 쓸데없는 노동력 낭비도 줄이기에 좋다.[* 수송용으로 쓰이는 종인 노새를 일반 보급에 운용하는 데에도 전용 마초 수송 등의 애로사항이 꽃피는데, 일본군 얘네들은 마초 준비도 제대로 안 한 데다, 노새 같은 장거리 이동에 특화된 종자도 아닌 일반 가축들을 갖다 썼으니 먹이는 금방 동났다. 그 탓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로 노역을 해왔던 가축들은 너도나도 지쳐서 객사했고, 필요한 가축은 현지 조달로 때우려고 했기 때문에, 수송 가축의 수는 충당되지 않았다. 당연히 죽은 가축이 수송하던 분량의 보급품은 다른 가축에 추가로 지우거나, 병사들이 대신 옮겼다. 후술할 내용의 이유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병사들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보급품을 조금씩 버리면서 갔고, 보급되는 물자량은 계속 떨어졌다. 게다가 여긴 정글이다. 습기가 많으니 물가나 작은 뻘도 많고, 나무 천지라 이런 길은 노새한테도 힘든데, 적지에서 약탈한 일반 가축을 수송 보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분명히 이 점을 지적하거나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이 점이 개선되는 일은 임팔 작전이 일본군의 패배로 끝나는 그 순간까지 없었다. 이 작전을 구상, 결심, 실행한 윗선들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생각 없는 작자들인지 알 수 있는 부분.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개)고생한다는 격언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뭐라고? 그딴 걱정은 하지 마. 적을 만나면 총구를 하늘에 대고 3발만 쏘아 보라고. 그러면 자동으로 항복하게 되어 있어. 15군 사령부 작전회의에서 '보급이 원활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지하게 염려하는 의견을 제시한 15군 보급참모 우스이에게 농담이랍시고 한 소리다. 무타구치가 적인 영국군을 얼마나 터무니없이 얕보고 방심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 이 말은 [[겨울전쟁]] 당시 소련의 몰로토프 인민위원장이 핀란드를 얕보면서 한 말이기도 한데, 이 전쟁에서 소련은 승리하기는 했지만 핀란드를 우습게 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러나 위의 모든 망언들 중에서도 단연코 압권인 희대의 망언이 있다. 일선 부대에서 보급품이 모자란다고 하소연하자 아래와 같이 답하였다. [anchor(대한민국_건국유공자_모전구렴야_씨)]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식량이 부족해서 곤란에 처할 것이라는 보급부대 참보들의 조언에 대해 사령부는 또 기가 막힌 방법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것은 정글에 나 있는 식물을 식량으로 채집해서 먹으라는 것이었다. 사령부는 식물학자들을 동원하여 빈랑 나무, 고사리 등등 미얀마 정글 일대의 식용식물들을 정리해 도감으로 만들어 침공부대에 나누어 주었다. 즉, 다시 말해 보급을 해주기는 커녕, 여기 먹을 수 있는 식물 목록이 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현지에서 식량을 보급하라는 뜻이다. 한 수 더 떠서 '[[일본인]]은 주로 채식을 하기 때문에 식량이 떨어지면 초근목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또는 '일본군은 원래 초식동물인 고로 주위를 둘러보면 풀이 이토록 많으니 먹을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은 [[아스카 시대]] 후반 무렵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전국민에게 [[육식금지령]]이라는 황당한 어명을 서기 675년부터 시행해서 [[메이지유신]] 직전까지 천 년이 넘게 시행하던 나라이다.] 그런데 그 말이 그 말이다. 당시의 참전했던 군인들 중 한 명은 풀을 가리키면서 "식량이 사방에 널렸는데 뭐가 걱정이냐. 풀을 뜯어먹으면서 전진하면 된다."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남겼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식량이 떨어지자 주변의 식물을 아무거나 집어먹다가 전멸한 사례는 흔하다. 게다가 [[정글]]은 사람들의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녹색 [[사막]]'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글]]은 동식물 자체의 밀집도는 높지만, 특정 종의 밀집도는 생각보다 굉장히 낮다. 그러다 보니 특정 종류만 먹는 생물체는 생존하기 어렵고, 특정 개체가 대량으로 불어나는 경우도 드물다. 이런 곳에 사람 수만 명이 먹을 식량이 있을 리가 없다.] 생산력과 인구부양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지역인데, 사람이 먹을 만하거나 많이 나는 식물은 적지만 독성을 가진 식물은 많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실은 현재 인류가 식용하는 동식물들의 야생종은 사람이 도저히 섭취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아시아]] 인류의 주식인 [[쌀]]만 해도 처음부터 흰 쌀이 자라서 섭취한 게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의도적으로 품종을 개량했거나, 우연히 발생한 식용에 유리한 변종을 보존 및 개선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니 인류의 손을 타지 않은 야생 그대로인 동식물은 함부로 섭취해서는 안 된다. 즉 채식 위주라고 해도 결국은 인류의 손을 탄 [[식물]]성 식품을 기반으로 한 채식, 그것도 [[토끼풀]]이나 [[잔디]] 같은 말 그대로 풀이 아닌 [[탄수화물]] 비율이 높은 곡식 위주이므로, 들판에서 자란 야생식물까지 먹을 수는 없다. 게다가 식물에는 흔히 독이 있다. 식물은 벌레나 초식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진화시켰는데 바로 [[알칼리]]계 독들이다. [[현미]]에도 약한 독성성분이 들어있다. 단지 식용식물의 독은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거나 오히려 이득이 되도록 진화시킨 경우라 문제가 안 될 뿐. 특히 종족의 유지를 위해 씨와 씨를 보호하는 기관에 독을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 즉 풀이라고 아무 거나 뜯어 먹으면 죽거나 탈난다. 대표적 예가 [[버섯]]인데, [[독버섯]]일수록 '날 좀 먹어줘요' 식으로 크고 예쁘게 자라지만[* [[독버섯/종류]] 항목만 봐도 알겠지만 누가 봐도 식용이 가능할 것 같은 안전해 보이는 모습이거나, 아예 식용/약용 버섯과 구분이 안 되는 버섯들이 태반이다. 오죽하면 버섯 전문가들도 버섯은 무조건 마트에서 사먹으라고 말 할 정도다.] 이에 혹해서 먹는 순간 큰일 또는 사망이다. 식물에서 눈을 돌려 벌레나 작은 동물을 사냥한다고 쳐도, 그걸로 1만 병력 이상의 식량이 될 리가 있겠는가? 저런 것만 먹으면 몸이 버틸 수 없다. 그 [[베어 그릴스]]도 구조받을 때까지 살아남는 시간을 연장하려고 벌레를 먹는다.[* [[베어 그릴스]]가 내내 단백질 등의 영양소를 언급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쟁이 아닌 개인의 생존에서의 영양소이고 전문적인 지식마저 없다면 죽음으로 인도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로 벌레나 쥐, 뱀, 개구리, 도마뱀 따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나마 민간인이라면 몰라도 이들은 군인이었다. 군인들은 전투상황 내지 전투 준비에 필요한 훈련 등의 이유로 어마어마한 열량을 소모한다. 뚱뚱한 사람이 군복무 시절에 찍은 사진을 보면 극초기에 찍었거나 땡보직이 아닌 한 대부분은 체형이 평범하게 잘 변하는데, 그만큼 열량을 미친 듯 소모하여 살이 빠지기 때문이다. 특히 [[훈련병]] 때는 위에 구멍난 것 마냥 원 없이 짬밥을 퍼먹어도 살이 빠지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급식장면에서 귀요미 먹방이 아닌 고봉밥 수준으로 퍼담고는 이것도 위꼴 수준의 리얼 먹방을 보여주며 싹 비우는 것에서 나타난다. <진짜 사나이>가 방송적 재미, 그리고 군대 미화를 목적으로 실제 군 복무보다는 난이도가 하향 조정된 상태임에도 진짜 배고파서 퍼먹을 정도로 배고파지는 곳이 군대이다.] 하다못해 [[예비군훈련]]만 받아도 살은 빠져서 온다. 따라서 군인에게 요구되는 섭취 열량도 그에 상응하는 고열량이다. 실제로 병영 식단은 1일 약 3천 kcal를 조금 넘는 기준으로 짜인다. [[전투식량]]들을 보면 알겠지만 평시에 먹기엔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잉열량을 자랑하는데, 실전상황에서는 그걸 퍼먹고도 열량이 부족해질 정도로 격렬하게 소모한다. 이렇게 급양이 군대의 기본 중의 기본인데, 이 분은 보급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거기에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데 군인들이 잘 버티고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괜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이 "군대는 배가 불러야 움직인다." 하고 말한 게 아니다.[* 나폴레옹도 [[러시아 원정]]에 보급으로 당한 적 있지만, 이건 러시아가 후퇴하면서 나폴레옹이 자연스레 전진하며 보급선이 길어진 상황에서 [[러시아군]]의 [[청야전술]] 덕에 현지 조달마저 막혀 당한 것이였다. 아니, 나폴레옹은 병참장관에게 충분한 식량과 건초, 그리고 이를 나를 마차를 준비하라고 하였고, 여기에 1만 2천 프랑, 한화로 1억이 넘는 상금까지 걸면서 최초로 [[병조림]]이라는 괜찮은 보존 기술을 얻어낸 덕에 현지 조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이전 전역에 비해 훨씬 방대한 보급체계를 갖추고 갔는데 이랬다는 것. 이렇게 준비를 잘해도 당할 수 있는 마당에 일본군은 치중병은 병사가 아니다라며 노래를 부르며 비전투원을 홀대하고 병참을 무시하는 풍조가 임팔 전투의 [[자업자득]]으로 이어졌다.] 더구나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정글에서는 전투력 유지와 생존을 위해 잘 먹고 체력을 보존하는 게 더더욱 중요한데 풀만 뜯어 먹으라는 것은 이미 그 시점에서 전투력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본인도 솔선수범해서 그렇게 생활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올시다. 추가로 약탈 보급을 할 거라며 예로 들었던 [[칭기즈 칸]]도, 식량은 말린 고기인 [[보르츠]]와 유제품인 [[몽골 요리#s-3|아롤]] 등의 전통 보존식으로 철저히 준비해 놨을 정도로 보급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무타구치 렌야의 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하는 말은 군대에서만이 아니라 이제까지 인류가 상대해온 적들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그리고 어쩌면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도 이기지 못할 __'''대자연을 적으로 돌리라'''는 말이나 다름없다.__ 결과적으로 이런 보급상 누수 때문에 무다구치의 예하 사단들은 목표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진맥진 상태에 이르렀고, 부족한 식량은 고스란히 일대에 얼마 안 되는 현지인들의 촌락에 대한 무자비한 약탈[* 단 사토 고토쿠 휘하의 31사단은 예외였다. 31사단은 애초에 현지인들과 교섭을 해서 물자를 조달하는 방식을 선택했기에 후퇴할 때도 다른 부대들과 달리 동정하는 현지인들이 많아서 다른 15군 휘하 사단들이 현지인들로부터 무자비한 보복을 받을 때도 오히려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로 이어졌다. 임팔 작전은 [[버마]]에서 [[아라칸 산맥]]을 직접 넘어서 인도의 북부인 아삼을 기습해 직접 압박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작전 입안과 강행 자체가 자신의 체면 때문이었다고 주위에서 증언했다. 게다가 무타구치가 제시한 작전 기한은 불과 15일밖에 안 된다. 물론 버마에서 아라칸 산맥을 직접 넘어서 [[인도]]의 북부인 아삼까지 보름 만에 갈 수 있을 리 없지만, 보병 개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식량이 15일치이기 때문에 작전 기한을 15일로 잡은 것이었다. 이렇듯 보급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작전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